[남한산성] 어쨌든 죽을 자리 나가는 건 없는 사람들이지 리뷰


<실제 역사말고 영화 기준으로 씀>



대부분의 창작물이 그러하듯 이 영화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삶이 있어야 그 다음 새로운 세상도 온다". 유독 한국에서 이런 메시지를 담은 전쟁영화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건 한국이 가진 국민적인 정서 때문일 것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해본 기억은 고구려 시대 이후로는 없는 것 같고 그 이후부턴 신라가 삼국통일 한다고 내부총질해가며 한반도민들끼리 싸운 거 외에는 사실상 한반도 밖으로 나가 본 기억도 없고 고려시대부터는 확실하게 남의 침략만 당하며 근근히 방어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호전적인 기질도 없고 그냥저냥 목숨부지 하면서 사방으로 둘러싸인 열강들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주된 민족적인 정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나라 영화가 미국이나 유럽권이 찍는 전쟁영화의 특징인(독일은 여기서 예외) 영웅적 정서, 어떤 자랑스러운 승전의 기억 혹은 퇴각했을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그들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과는 구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나쁜가? 이런 정서로 말미암아 한국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할텐데 그런 걱정은 굳이 하지 않고 싶다. 사실이 맞기는 하지 않은가. 전쟁을 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아니 이득을 보는 이가 없다면 대체 왜 하는가? 자존심 때문에? 미국은 자존심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본토가 공격당한 기억은 2차 세계대전 진주만 공격 수준이었고 그 외에는 모두 유럽이나 아시아, 중동 등에 파군되어 싸운 기억들이다. 즉, 전쟁에서 자신들은 정의로운 방향에 서서(베트남전은 제외를 하더라도) 싸웠다는 어떤 공통된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 전쟁이 곧 그들의 자존심과 미국이라는 국가의 자부심으로서 작용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침략을 당해본 나라는,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 꾸준하게 당해보고 또 거기서 패전의 기억을 안아 본 나라는 다르다. 한국이 바로 그렇다.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유일한 승전의 기억은 임진왜란 뿐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몇 차례 청나라의 침공, 패배와 근대사에 이른 열강과 일본의 수탈, 식민지화, 한국전쟁이라는 내전 속에서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곧 고통일 뿐이며 국토를 황폐화시키는, 그렇기에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할 민중들에게 아무런 득도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명확하게 박혀있다. 특히나 한국전쟁과 같은 내전에서 위에서는 인민군과 중공군이 밀려내려올 때 아래에선 빨갱이를 소탕한다며 보도연맹을 학살하고 여성을 군의 성노예로 사용한 것과 같은 기억들은 전쟁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을 높이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에선 남한산성과 같은 영화에서 척화파보다는 주화파의 주장이 더욱 진실되고 진정성있게 들릴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함으로서,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자긍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위정자들이 그들만의 납득 할 수 없는 대의명분을 핑계로 삼아 백성들을 도구로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인식을 할 때 누가 자부심을 가지고 창을 들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저 위의 홍준표의 남한산성 후기가 한심하다 못해 웃긴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홍준표는 자신들이 김상헌과 같은,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는 주전론자들이라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재 한국에는 김상헌은 없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같은 야당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된 김류와(영의정) 같은 이들이다. 자신들의 알량한 모가지와 관직을 지키기 위해 발 밑에 깔린 민초들은 짓밟아버리는 것을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 김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세자를 볼모로 보낼지라도 화친을 청해 전쟁을 멈춰야한다는 최명길에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동조하려다 이내 김상헌의 강경한 발언에 동조하지 않았는가. 또한 자신이 '무당'에게서 받아온 길일에 300의 군사를 사지로 내몰아 모두 죽게 만들고도 그 책임을 회피하려 당시 수어사와 그의 부관에게 죄를 덮어 씌우고는 꾸역꾸역 살아남아 계속해서 화친을 애원하는 최명길의 목을 자르라 외치지 않았는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 아닌가? 무당, 꼬리자르기, 발목 잡기... 현재 야당들이 처한 모습과 닮은 것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능한 이들을 위정자로 내세워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이들이 할 말은 아닌 것이다.

"[장시호/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어제, 음성대역) : 통일 대박도 이모 아이디어가 맞고요. 
그 얘기가 나온게 원래 통일을 시키고 나서 대통령을 한번 더 하자는게 이모 계획이었거든요. 
이모가 사람을 시켜서 38선 부근에 땅을 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로서는 거북한 공격을 받게 될 안보 의제로 좁혀서 (만찬 회동을) 하면 
자유한국당도 오실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회동 참석자들이 28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협치를 위한 노력에 자유한국당이 참여해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쭉 그렇게 노력해오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명분이 있기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도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이다. 치욕이 곧 패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죽음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만백성이 고개를 조아리는 것보다 한 명의 군주가 고개를 조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그런 치욕도 견뎌 낼 수 있는 존재로 있으라고 세우는 것이 위정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백미는 인조가 칸 앞에 나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인조 시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에서 제단에 머리를 박아 피를 철철 흘리거나 칸이 조선 왕의 치욕을 더하기 위해 조롱하는 장면이 반드시 있었지만 이 작품에선 칸도, 인조도 그 어떤 드라마적 요소를 보이지 않는다. 군신의 예를 갖추라 한 뒤에 칸은 높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인조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조용히 땅에 머리를 박고, 또 박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저 이마에 흙만 잔뜩 묻힐 뿐이다. 최명길은 자신의 손으로 쓴 화친 문서로 인해 겪는 임금의 고초에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럴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할만하기에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기에 하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옵니까?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삶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출처: 영화 <남한산성> 중에서




덧글

  • 흑범 2017/10/05 18:36 # 답글

    광개토대왕은 왜빼냐 정신질환 또라이씨

    너는 부모님 만나러 안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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